에드바르 뭉크는 누구인가
노르웨이의 국민화가이자 표현주의의 거장이라 불리는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는 1863년 12월 12일, 스웨덴과 노르웨이 사이 로이텐 지방의 빈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뭉크는 80년이라는 생애동안 25000여 개라는 엄청난 숫자의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뭉크의 모든 작품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고독과 불안입니다. 대체로 사람과 자연을 그렸으며, 밝은 느낌 작품을 때때로 그리기도 했으나 대체로 어둡고 정신적인 고통을 보여주는 듯한 작품을 많이 제작했습니다.
뭉크가 어두운 분위기의 그림을 제작한 배경에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가족의 죽음이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뭉크의 어머니는 뭉크가 5살에 결핵으로 사망하였으며, 뭉크가 13살이 되던 해에는 2살 위의 누나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한, 그의 여동생 중 하나는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였고 그곳에서 사망했습니다. 이렇게 가족 내에서의 죽음을 어린 나이에 연속적으로, 여러 차례 겪은 뭉크는 그의 인생 내내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이 따라다녔고, 이러한 감정은 그의 작품 속에 항상 내재되어 있습니다.
뭉크의 절규, 절규의 뭉크
1893년 제작된 뭉크의 걸작이자 현시대 사람들의 고통과 불안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절규'입니다. 뭉크는 수 년에 걸쳐 이 그림을 5가지 버전으로 제작했는데, 그중 위 그림이 템페라, 유채, 파스텔을 사용해서 그린 가장 대표적인 버전입니다. 사실 처음 이 작품과 함께 뭉크가 공개한 메모에 따르면, 이 작품의 제목은 '절규'가 아닌 '자연의 절규'였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그림은 일시적인 사건 때문에 단순히 놀란 정도의 사람이 아닌, 대자연이 공포스럽게 작용하는 듯한 비정상적인 사람의 상황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핏빛으로 흔들리는 자연과 그 안에서 공포에 휩싸여 절규하는 인간의 모습, 실제 상황인지 상상인지 분간되지도 않는 그림 속에서 표현되는 뭉크의 강한 감정 묘사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작품은 뭉크가 1892년에 겪은 공황 발작을 보여줍니다. 그림의 배경은 뭉크가 주로 작업한 노르웨이의 '오슬로 피오르'이며, 뭉크의 주요 소재로 자주 등장하고는 합니다. 뭉크는 친구들과 함께 해가 지던 오슬로의 산책로를 걷고 있다가 갑자기 엄청난 불안감을 경험했고, 난간에 기대 소리지르고 있는 본인을 그렸습니다. 당시 함께 있던 두 친구들(좌측)은 계속해서 걸어갔고, 뭉크 혼자만 대자연이 핏빛으로 휘몰아치는 듯한 느낌을 경험했음을 보여주며 내면에서 비롯된 절규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뭉크는 이 그림을 통해 자신의 시각에만 들어온 감정, 뭉크 자신만이 느끼고 볼 수 있었던 풍경과 시야를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그는 "미친 사람만이 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그림 속에 적어놓으며 자연스러운 풍경으로부터 느낀 뭉크의 불안과 절규, 그리고 본인 밖에 느끼지 못했다는 고독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뭉크만의 아주 개인적인 감정을 그린 작품이지만, 불안감을 느끼는 수많은 현대인들의 공감을 얻어냈고 세기의 명작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두려움과 질병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고통들을 간직하고 싶다."
- 에드바르 뭉크
1889년 12월, 뭉크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납니다. 뭉크가 어른이 된 이후 맞이한 아버지의 죽음은 뭉크에게 깊은 상실감을 주었고, 그의 우울증을 키워나갔으며 그가 삶의 의지를 점점 잃도록 했습니다. 이 시기 뭉크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동시에 뭉크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정신적으로 극에 치닿고서야 삶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뭉크는 계속해서 그의 감정과 경험을 보여주는 예술활동을 했고, 노르웨이와 베를린에서 전시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베를린의 예술 평단 사이에서 뭉크의 화풍은 기존에 없었던 스타일이었기에 비평과 논란이 일어났는데, 뭉크는 이런 평단의 반응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더 우울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즐겼다고 합니다. 자신의 작품이 화두가 되며 뭉크 혼자서만이 느끼고 바라본 감정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느꼈기 때문 아닐까요? 그를 우울 속으로 잡아끄는 고독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 주는 이벤트처럼 다가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뭉크는 그렇게 자신의 화풍을 더욱더 발전시켜 나가며 삶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적은 없다. 그림처럼 순수한 무언가가 이렇게 물의를 일으켰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 에드바르 뭉크
뭉크는 그가 겪은 고통과 불안을 그림을 통해 표현하며 두려움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용기를 보여주었고, 이러한 그의 노력은 우리에게 예술이 전하는 힘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며, 그의 예술적 유산은 계속해서 감상과 연구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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