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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s

점 하나에 빛을 담다: 조르주 쇠라

by 파랑성 2023. 12. 9.

안녕하세요, 화가와 작품, 전시들을 소개해드리는 블로거 파랑성입니다. 오늘은 신인상주의의 대표 화가이자 색점들을 찍어 그리는 점묘법의 대가 조르주 쇠라에 대해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조르주 쇠라는 누구인가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는 신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스 출신의 화가로, 원색의 물감을 사용해 색점을 찍는 방식으로 장면을 묘사하는 점묘화의 창시자입니다. 파리의 유복한 법조계 집안에서 태어난 쇠라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학교에 다니며 화가의 길을 택했는데요. 1880년 육사 복무를 끝낸 후 파리로 돌아와 센강 근처의 작업실에서 몇 년간 작업에 몰두를 하다 1883년 <아스니에르의 물놀이>라는 근대미술사의 중요한 발자취를 남기는 작품을 공개하게 됩니다.

그러나 쇠라는 파리의 한 살롱에서 작품 전시를 거절당하자 주류 미술계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독립예술가 협회에서 폴 시냑을 만나게 됩니다. 폴 시냑 또한 쇠라와 함께 신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남은 인물입니다. 쇠라는 짧은 생애 동안 새로운 시도를 통해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중요한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신인상주의란 무엇인가

우선 인상주의에 대해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전통적인 회화방식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젊은 작가들이 클로드 모네를 주축으로 한 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1874년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이라는 작품명에서 '인상파'라는 명칭이 생겨났습니다. 인상주의는 빛, 특히 햇빛의 변화로 생기는 인상을 포착하기 위해 형태의 정확도보다는 색채에 집중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인상주의의 탄생과 클로드 모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 빛의 색을 담는 화가: 클로드 모네

신인상주의가 생겨나게 된 계기, 그리고 인상주의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19세기말 프랑스를 배경으로, 인상주의의 의도를 계승함과 동시에 형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던 기존의 인상주의에서 과학적인 근거를 부여하며 그림을 그리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입니다. '신인상주의'라는 용어는 조르주 쇠라가 1884년 5월,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작품인 <아스니에르에서의 목욕>을 보고 비평가 페네옹이 붙인 명칭입니다.

 

인상주의와는 달리 색채들을 원색으로 환원하여 수많은 점들로 화면을 구성하는 기법인 '점묘법(Pointillism)(= 분할주의)'라는 테그닉을 기반으로 합니다. 분할주의라고 불리는 이유는 캔버스에 색칠을 할 때에 팔레트에서 색을 섞어 혼합된 색을 올리는 것이 아닌 분리된 원색만을 사용해 점을 찍어 섞인 색감이 보이도록 착시효과를 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신인상주의 화가들의 점묘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과학적 발견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습니다. 19세기에 미셸 외젠 슈브뢸이라는 프랑스 화학자는 두 가지 색이 겹쳐지거나 매우 가깝게 붙어있으면 멀리서 보았을 때 다른 색으로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한 가지 색을 집중해서 본 뒤에는 정확히 반대되는 보색의 잔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아, 색의 상호작용에 대한 개념을 구축했습니다. 이 발견은 신인상주의 화가들의 흥미를 끌었고,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내는 데에 일조했습니다.

 

조르주 쇠라의 대표작,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 쇠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Un dimanche après-midi à l'Île de la Grande Jatte)>, 1884-1886, 출처: 시카고 미술관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센 강 가운데에는 그랑드 자트라는 파리 사람들이 휴양지로 즐겨 찾던 섬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뚝섬이나 노들섬 같은 느낌일 듯하네요. 그림 속의 여성들이 입은 독특한 모양의 드레스는 당시 유행하던 버슬(bustle) 스타일이라고 해요. 쇠라는 여러 색의 물감들이 섞일수록 탁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원색을 칠할 때 덧칠을 하는 것을 대신해 점으로 찍어 표현했습니다. 자연의 색 그대로를 캔버스에 올리고 싶었던 것이겠죠? 또한 이 그림을 보면, 특히 나무 부분이나 그림자가 진 부분을 보면 홀로그램이나 텔레비전의 노이즈처럼 번쩍 거리는 듯 보입니다. 색채 이론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쇠라는 보색을 섞어 찍을 때 우리의 눈에서 강렬한 대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를 '보색효과'라고 합니다. 이 효과는 우리 시각에 큰 자극을 주며 번쩍거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죠. 

 

그런데 주말 한낮의 야외소풍을 즐기고 있는 장면이지만 어딘가 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나요?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봐도 환하게 웃고 있지도,  이야기를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다른 인상파 화가들이라면 좀 더 활발한 분위기와 따사로운 햇빛을 강조하여 붓터치를 하거나 묘사했을 수 있지만, 쇠라는 다른 철학을 가지고 그렸고 이 때문에 그가 신인상주의 화가로 구분됩니다. 쇠라는 순간마다 변화하는 자연과 빛을 담는 데에 별로 집중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장면캔버스 위에 담으려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요? 쇠라는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 요소는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표정을 무표정으로 묘사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정은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 가장 큰 요소이니까요. 쇠라의 다른 그림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물의 매력이나 감정이 전해지도록 표현하기보다는, 그의 색채적 결합과 이론이 보이게끔 하는 화면의 구성 중 하나로 사용합니다.

 

이 그림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크기에 놀란다고 합니다. 가로가 3미터에 달하는 큰 작품이기 때문이에요. 하나하나 점을 찍어 표현하는 데 3미터라면, 그가 얼마나 끈기 있고 인내심이 대단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따라서 야외에서 빠르게 그리는 인상파와는 달리, 스튜디오에서 2년 동안이나 제작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쇠라의 점묘화는 개수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쇠라의 친구들은 쇠라를 '절대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으로 평가했다고 해요. 쇠라는 병에 걸려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작품의 개수는 많지 않지만, 그의 새로운 시도와 혼이 담긴 작품들은 미술사에 큰 영향을 남겼고 후대의 예술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번 글을 통해 신인상주의와 조르주 쇠라에 대해 조금 더 이해가 되셨길 바라며 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